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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으면 혹 오해라도 할까 싶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생리 주기에 따라 육체와 심리의 변화를 경험하는 생리전증후군(Pre-menstrual Syndrome). 수많은 증상 중 매달 나를 겁먹게 하는 것은 통제가 어려운 심리 불안 상태다.
남자 둘을 앉혀놓고 꺼낼 주제는 아니었지만, 여자가 생리 주기 때마다 겪는 생리전증후군에 대해 남자친구를 비롯한 지인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평균 5일 동안 생리를 하는데 그 전부터 증상이 시작되는 것이니, 10일 정도 몸의 변화를 겪는다고 치자. 한 달에 3분의 1, 1년이면 4개월, 여자들이 평생 겪는 그 시간을 모두 계산하면 정말 어마어마하네! 대대적으로 전시 기획을 해도 좋겠어.”
왜 아니겠는가. 주기에 따른 몸과 정신의 변화, 사회의 시선 등은 끊임없이 여성주의 작가들에게 화두가 되지 않는가. 언뜻 프랑스 작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탐폰으로 만든 거대한 샹들리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작품에 사용된 삽입식 생리대인 탐폰은 불편한 생리대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고 추앙받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자유로워지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것도 생리전증후군 중 몸이 아닌 심리 변화를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방 성분을 넣거나 천연 펄프로 개발한 생리대를 비롯, 생리통을 완화시켜준다는 생리용 거들 등 각종 생리 용품은 많다. 그러나 약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심리적 생리전증후군을 해결해줄 대안을 연구한 제품은 보지 못했다. 특히 타이레놀로도 위로되지 않는 심리 변화에 대해서.
“지희는 좀 심해. 아주. 그때는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야.” “일전에 내 여자친구를 보니까 우울해하는 것 같던데, 언뜻 다시 보니 울고 있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날이라고 하더라고.” “실컷 울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서 그래요.” 두 남자의 말에 에디터가 뜨끔해 변호하듯 서둘러 이야기한다. 물론 경험해본 바다. 신경이 예민한 편인 나는 생리를 시작하기 하루나 이틀 전이면 마치 칼날을 갈아놓은 듯 날카로움이 최고조에 이른다. 툭 건드리면 불쑥 화내기 쉬운데, 일할 때는 모르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님과 남자친구에게 여지없이 발현된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놓고 그 다음 날 팬티에 비친 생리혈을 보고서야 ‘아차!’ 한다. 이렇다 보니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그날이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일부러 ‘화’를 주의하게 되고, 그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는데, 그렇다고 해결되진 않으니 한 달에 한 번 치르는 생리전증후군이 무섭다. 생리통처럼 이 불안정한 심리 상태도 약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일까?
“몸과 마음은 하나예요.” 일전에 취재차 만난 정신과 선생님께 상담을 부탁했다. 몸이 좋지 않으니 마음 또한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쉽게 짜증 내고 업무 산만, 폭식하거나 초콜릿처럼 특정 음식을 먹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데, 여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생리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라는 것을 믿고 싶진 않지만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여자를 지배한다.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떨어질 때 감정, 체온, 성욕, 수면, 식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수치도 함께 떨어지는 것. 에스트로겐 수치가 일정한 남자에 비해 여자의 에스트로겐은 생리 직전, 출산 직후, 폐경기에 뚝 떨어진다. 이 시기에 우울증을 쉽게 겪는 이유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여자가 남자보다 호르몬에 더 쉽게 영향 받는다는 것. 그러니 ‘물질’에 의해 감정의 기복이 들쑥날쑥한 여자를 남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심한 우울증이 오면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렇다고 우울증 약을 곧바로 복용할 필요는 없다. “몸을 햇빛에 노출시켜 주 3회 정도는 운동을 하고 삐콤이라고 하죠, 비타민 B, D를 세 달 동안 집중적으로 드셔보세요. 세로토닌 합성을 돕는 방법이니까요.” 심리적 생리전증후군을 위한 제품은 없냐고 탓한 나 자신 또한 매달마다 쓰고, 금세 까먹고 다시 쓰는 사이코 드라마를 멈추기 위해 단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임을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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